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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옥문화 인터넷 박물관을 열면서  



정건재 동북아문화교류회 회장

필자는 동아시아를 한 틀로 봐야 하고, 그것을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확신할 무렵 “운명처럼” 흑피옥(黑皮玉)을 만난 것이다. 처음에는 온통 의문이었다. 왜 비싼 玉에 검은 칠을 했는지부터 제작 주체․시기․용도․가공 기술까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아무 것도 없었다. 연구를 시작할 최소한의 단서(端緖)조차 찾을 수 없었다. 특히 흑피옥은 발견지가 중국 내몽고 우란차부(烏蘭察布)라는 점에서 옥 유물이 고대 한민족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고, 결국 흑피옥은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의 다시 말해서 황하 유역의 중화 문명이 아니라 속칭 사방의 오랑캐(?)들의 역사적 유물로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같은 옥문화 계열로 추정되는 홍산문화의 ‘유옥위장唯玉爲葬’‘유옥위례唯玉爲禮’와 같은 일련의 반인반수 형상의 옥기 유물에 대한 역사적 실체와 역사적 주체를 규명하고 싶은 학문적 동기에서, 요하 지역의 옥문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형상과 일련의 흑피옥 조각, 그리고《산해경》의 반인반수 신들에 대한 신화의 핵심적 구성 요소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옥문화의 역사적 주체를 규명할 수 있는 역사적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흑피옥에 양각(陽刻)된 문자와 상(은)의 갑골문과 홍산(紅山)문화와의 일련의 요하 지역의 옥문화의 역사적 유물이 한 뿌리의 다른 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결국 요하 지역의 옥문화는 동일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역사적 주체에 의한, 광범위한 요하 지역의 주인이었던 동이족의 역사적 유물이라는 것을 
동이어 – 동이문자 – 동이옥 - 《산해경》- 고구려 고분벽화 - 일본 고분벽화 등을 관통하고 있는 역사적 연결 고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옥문화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삼국의 옥문화에 대한 서로 달랐다. 중국은 인구 대부분이 玉을 소지한다고 할 정도고, 일본의 경우도 3종의 신기(神器)에 곡옥(曲玉)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옥문화는 현재 진행형이었지만, 그러나 한국의 옥 문화는 거의 진공에 가까울 정도로 국가적 차원에서 무관심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식적으로 옥문화를 들여다보는 대학, 연구소, 연구자는 물론 옥문화 관련 국제학회나 학술대회에 참석할만한 변변한 연구 결과조차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나마 여인들의 가락지나 비녀 그리고 공예품으로도 일상 생활 가운데 쉽게 접할 수 있던 玉을 아예 보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 
필자는 최근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주요 저서로《한민족의 玉문화》상생출판,2015,《Jade Culture of the Dongyi東夷-Examined Through Black-Skin Jade》Sangsaeng Books. 2018.12.를 펴내고, 옥문화 전용 블로그blog.naver.com/dongsan5312도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신화(神話)시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동이족의 옥玉문화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고, 그 역사적 주체를 규명하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특히 개관을 앞두고 있는 
‘동아시아 옥문화 인터넷 박물관 Korea East-Asia Jade Museum’ 
https:www.keajm.com/ 라는 ‘인터넷 박물관’의 개관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옥문화의 백치 상태, 진공 상태를 타파하고 우리 조상들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옥문화 강국, 문화 강국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데에 혼신을 다하고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옥문화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 기존의 대륙 중국과 해양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반도 중심의 소국의 역사가 아니라, 이웃 나라를 아우를 수 있었던 강국으로서의 역사적 인식을 회복할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하고 이를 제공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으며, 나아가 옥문화 강국, 즉 역사 강국에 대한 역사적 대전환의 학문적․과학적 단서를 발견함으로써, 한반도 남부라고 하는 협소하고 폐쇄적인 지리적 공간을 벗어나 역사적 인식의 공간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연구이다. 결국, 북으로는 동아시아 대륙으로, 동으로는 태평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의 역사를 옥의 길(玉路)을 통해서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熱河日記》朴趾源 : 朝鮮舊疆 不戰自蹙. 조선의 옛 영토는 전쟁도 하지않고 스스로 위축되다. 
《朝鮮上古史》신채호(申采浩,1880~1936).鐘路書院.1948.10.5. 
독갑이(도깨비)도 뜨지 못한다는 땅뜨는 재조를 부리어 나로서 보건댄 朝鮮史는 內亂이나 外寇의 兵火에서보다 곳 朝鮮史를 著作하던 其人들의 손에서 더 蕩殘되엿다 하노라. 
더 크지도 말고 더 작지도 말어라한 鴨綠江以內의 理想的 疆域(我邦疆域考曰不大不小극符帝心)을 劃定하랴하며 
平壤에 擧兵하야 北伐을 實行하랴다가 儒徒의 金富軾에게 敗亡하고 富軾이 이에 그 事大主義를 根本하야《三國史記》를 지은 것이라 故로 東北 兩扶餘를 빼여 朝鮮文化의 所自出을 塵土에 뭇으며 발해를 버리여 三國以來 結晶된 文明을 草芥에 던지며 吏文과 漢譯에 어두워 一人이 數人이 되고 一地가 數地된자 만흐며 內吏나 外籍의 取捨에 흩여서 前後가 矛盾되고 事件이 重複 만허 거의 史的 價値가 업다할 것이나. 
위에서 언급한 박지원, 신채호의 사료를 보더라도, 사실상 백제의 멸망(660)이후 485년,고구려의 멸망(668)이후 무려 477년이 대략 반천년이 지나서 고려조 1145년에 등장함으로써 사적 가치가 거의 없다고 할《三國史記》를 전면적으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라 중심의 역사 서술만으로는 한민족 전체의 역사적 손실이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승자의 기록은 정치이고, 진정한 의미의 역사는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역사적 관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 특히 요하 지역에 출토된 옥기 유물들은 적어도 만년 전으로부터 등장해서, 적어도 5000년 이상 동일한 지역에서 동일한 역사적 주체에 의한 역사적 실체로서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문헌 사학 위주의 연구를 고집하는 것은 요하 지역의 옥문화의 역사적 주체를 규명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하 지역 옥문화의 역사적 후예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웃 나라 중국의 주은래의 말대로“서적상의 기록은 완전히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당시 사람이 쓴 것이지만 관점이 틀렸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것은 후대 사람이 위조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서는 완전히 믿을 수만은 없는 2차 자료일 뿐이다.” 또 단재 신채호는《조선상고사》에서,“英國史를 지으면 英國史가 되며 露國史를 지으면 露國史가 되며 朝鮮史를 지으면 朝鮮史가 되어야 하겟거늘 由來 朝鮮에 朝鮮史라할 朝鮮史가 잇섯더냐 하면 首肯하기 어렵다.”(6쪽). 
이와 동시에, 어느 북한 학자가 중국 학자들을 향해,“지금 현재의 땅 주인은 중국이 맞지만, 역사의 주인은 조선이라는 것이다”라고 한 사자후가 새삼스럽다. 최근 중국측의 공식적인 외교 사료 
“모택동 ‘요동은 원래 조선 땅’《한겨레》2014.2.28.”, 
“주은래 ‘투먼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周恩來總理 - 4 - 談中朝關係>《外事工作通報》1963,6,28.” 특히, 주은래는 곽말약의 공자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인용하면서 ‘새로운 출토문물出土文物’에 대해서 언급 하고 있다. 필자는 요하 지역의 옥 문화를 주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격물궁리格物窮理’에 빠지지 말고, ‘격물格物’ 즉 ‘격옥치지格玉致知’의 관점에서의 연구를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20세기 후반, 압록강 건너편 요하 지역에서 홀연히 등장한 ‘옥문화’를 들여다 보면서 혹여라도, 
‘見文忘史견문망사’ : 문헌을 들여다보느라 역사를 잃다. 
‘見文忘国견문망국’ : 문헌을 들여다보느라 나라를 잃다. 오히려 ‘옥 문화 강국의 역사로 문화 강국의 새날을 희망’의 큰 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이들 일련의 옥 문화의 역사를 동일한 지역에서 장기간 동일한 역사적 연속선상에 위치한 한민족의 선조, 복희, 여와, 신농염제, 치우 등 동이족 계열의 신화의 주역들이 활동한 역사적 결과물로, 결국, 동이족, 한민족의 역사적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동이족 옥문화의 역사적 주체를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동아시아 옥문화 인터넷 박물관 https:www.keajm.com/ 의 전인미답의 첫발을 내디디면서, 이와 더불어 세계 최초의 흑피옥 박물관 설립에도 희망을 걸고 개관의 인사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수년 전부터 2023년, 흑피옥학교의 설립을 비롯하여 2024년, 평택 지구의 흑피옥 강연, 2025년 흑피옥 스터디를 함께 한 동북아문화교류회, 동아시아옥문화연구학회의 회원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우리의 옥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원과 격려와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무한한 경의를 표하며, 옥문화 강국의 국가적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2026. 2. 2. 광주인 동산 정건재 드림.